노재명 (nojm )
[단편] *** 존재의 가벼움 *** 08/10 04:18 153 line
**** 존재의 가벼움 ****
나는 지금 두가지의 고민에 빠져있다. 27층의 빌딩 창밖에 매달려 고
민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그것은 여차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
과를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결정을 내려 만류인력을 시험해
보려는 마음만 먹으면 그것은 정말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시간을 고
민해서 결정을 내리고 2초의 굳은 결심만 있으면 그대로 나는 그 위대한
만류인력의 법칙을 바로 이자리에서 시험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2초의
참을 수 없는 결심.... 누구나 알고 있듯이 2초,3초,4초,5초,.... 몇분을
고통속에서 견디다 보면 나름대로 자신의 삶 자체를 새롭게 재인식해서
삶에 대한 보이지도 않는 희망을 어거지로 부여잡고 다시 끈질기게 버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밖에 매달려 창문을 닦다가 어느순간 갑
자기 2초의 참을 수 없는 굳은 결심이 선다면...
나의 직업은 여러분들이 미리 짐작하셨겠지만 빌딩의 유리창을 전문적
으로 닦는 '딱세'다. 때낀 유리창을 보석처럼 반짝이게 닦아 내는게 나
의 직업이다. 유리창에 앉은 먼지를 닦고 자동차의 매연때문에 낀 시커
먼 떼도 닦아 낼 뿐만 아니라 새똥도 닦아낸다. 내가 닦은 유리창 너머
로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보며 '아직은 세상이 그렇게 오염되지는 않았지'
하는 얇팍한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유리를 통해
서 보는 변색된 세상의 색깔임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어쩌면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 일 수도
있다. 왜 그런고 하면 사람들에게 그런 비정상적인 안도감을 줄 수 있어
서가 아니라 유리창을 닦다 보면 창안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들을 감
상(?)할수도 있다는데 두고 하는 말이다. 대부분은 별거 아닌 평범한 회
사안의 분위기를 엿보는 것이지만 가끔은 아주 스릴넘치고 흥미있는 사무
실의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이 직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되는 일련의 추억거리 일지도 모른다. 처
음에야 일을 시작하면서 남보다 대단한 담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자존심을 지켰지만, 이제는 그런 필요없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대신
추억만들기(?)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였다. 나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것은 그런 에피소우드를 그들에게 말해
줄때 나의 유머성이 인간적인 가치 판단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즐거움이고, 나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다. 아니, 아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나의 추억들을 말할때마다 다른사람의(혹은 지어
낸 이야기처럼)경험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결코 내가 '딱세'임을 밝
히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나는 많은 상식과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나만의 숨겨진 자부심이지 남들에게 드러 내놓
고 우쭐할 수 있는 그런 자부심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두가지의 고민에 쌓여 있다.
먼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전에 나는 지금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나만의 추억을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하겠다. 내가 겪었던 것중에 가장 재
미있고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중에 액기스일뿐더러 그것은 '모모 유머집'
에 도움을 주어 판매 부수를 늘려 주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된다.
내가 겪었던 가장 흔하고도 가장 재미있는 애피소우드중 하나인 그얘기
는 현실적인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 에로티시즘이 뭘까? 배운게
짧아서 영어로는 스페링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뜻이 정확히 예술적
으로 어떻게 해석 되는지(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왜 간단히 '색정적인 경
향'이라고 사전에 쓰여진대로 쉽게 해석하지 않고 좀더 복잡하고 애매모
호하게 다루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모르니까 그냥 넘어가자. 누구나가
그냥 알고 있는 상식으로...
내가 본 가장 흥미있는 '색정적인 경향'의 장면은 18층의 유리창안에서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키스를 한다거나, 서로의 몸을 더듬는것, 가벼운
몸의 접촉, 그리고 급행열차를 타는 그런 일반적인 에로티시즘은 너무도
흔하고 많이 접해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것에는 이미 흥미를 잃고 있었
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고리타분한 경
험담을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본것, 18층에서 일어났던 그
일은 분명 특별했으며 그때의 느꼈던 나의 진지함을 제대로 다 설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군소리 이제그만 접고.
창문안으로 나는 그 기묘한 광경을 하나도 빼놓치 않고 똑바로 삼십분
동안 숨가쁘게 지켜 볼 수 있었다.
기묘? 그래 내가 본 그 광경을 그렇게 표현해도 맞을 듯 하다. 창안
은 모기업체의 중견간부 사무실 이었으며 상당히 고급스럽게 꾸며진 소파
나 가구들이 더러운 창과는 어울리지 않게 환상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었
다. 그것은 또한 나의 자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조건 이었던 것도 사
실 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질투심까지 일으키는것은 살이 피둥피둥 오른
늙은 남자와 다시한번 보기도 힘든 아름답고 젊은 미녀가 함께 다정히 내
눈에 들어 온다는데 총각인 나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물론 이런 질투
심은 그 늙은이에대해서 증오심과 혐오감을 갖는것이 있었다. 질투심,
자괴심,증오,혐오감.... 그게 그거로 서로 맞물려 들어가니 특별히 값비
싼 사무실의 고급가구들과 그런 상황이 분리되어서 나를 괴롭혔다고는 생
각되지 않는다. 지난 다음에 느낀 바였지만은... 나중에는 그 모든 추
상적인 감정들이 '돈'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써 뭉뚱그려져 인식되어 나
의 괴로움의 근거를 정확히 밝혀 낼 수 있었다.
또한 그때는 나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광경
을 똑바로 보기 위해 급하게 내가 마주한 얼굴 부분만을(정확히 말하면
눈이 마주한 창부분) 박박 문질러 깨끗히 하고, 내가 화들짝 놀라 유리창
에 달라붙은 코와 입을 떼기까지 아니, 어쩌면 그들이 더욱 놀라 심장마
비로 죽을지도 모를 그런 사태가 있기까지 나의 영혼은 두개의 더러운 영
혼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을 안다. 두개의 더러운 영혼과 한개의 또다른
실수로 끼어든 나의 영혼히 합세하여 그 사무실의 안을 끈적끈적하게 떠
돌며 방황했던것을 숨기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관찰자로써, 방관자로써
의 자신이 아니라 세 영혼모두 하나의 영혼처럼 일치되어서 함께 했던 놀
음 이었다.
거기에는 기도와, 숭배와, 갈증, 환희, 수렁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자는 먼저 소파에 가느다란 허리를 구부려 앉았다. 그
리고 오른 다리 하나를 왼쪽 허벅지로 꼬아 올려 늙은이를 정면으로 향했
다. 나의 시선과 늙은이의 시선은 그녀의 매끈한 종아리에서부터 드러난
미니스커트 끝자락까지 올라갔으며 그녀의 자태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
다. 나는 창밖에서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말인가
는 들리질 않았다. 그것은 중요한게 아니다. 그녀의 움직이는 입술은
나를 빨아 들였으며 또한 늙은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늙
은이가 자신의 입술 위를 손가락으로 살짝 만지는 행동에서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 예쁜 머리띠를 풀었
을때 그녀의 목에 찰랑거리며 스쳐지는 목에서 우리는 깊은 호흡을 내쉬
고 다시 그녀가 머리를 말아 올릴때 눈이 부시도록 희 목선을 보고는 나
는, 아니 우린(늙은이와 나)숨을 목구멍 중간쯤에서 완전히 멈추었다.
그녀가 머리를 말아 올리고는 머리띠로 마무리 지은다음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는데, 우린 다시한번 아른한 안개속에 묻혀져가는것을 느끼고 있었
다. 거뭇한 눈섶과 젖은 그녀의 눈동자가 우리의 심장을 적셨고, 유혹해
내어 물어 뜯었다. 늙은이와 나는 맑은 눈동자속에 먼지처럼 내려앉아
그녀가 고통 스러워 할까봐 심한 걱정속에 사로잡혔다. 이내 우린 그녀
가 아프고 시린 눈때문에 창백해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린 뭇에나온 물고기 처럼 그녀의 젖은 호수에 거침없이 뛰어 들고 있었
다. 그녀의 눈이 잠시라도 껌벅이기라도 하면 나는 심장이 뜯겨져 나가
는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꼈고 벗겨진 살갖으로 뜨거운 태양아래 내 동댕
이 쳐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방비를 경험했다. 갑자기 그녀가 소파에
서 일어섬으로 해서 나와 늙은이는 새로운 격정에 휩싸였다. 그 격정은
나와 늙은이의 상상이리라. 정말 단지, 상상에 불과 하였다. 그녀가 돌
아서서 창쪽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짧은 몇초 동안 나는, 아니 우린(역
시 늙은이와 나) 기도했고 숭배했으며, 갈증이 일었고,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그 몇초의 마지막에 가서는 우린 모두 다 함께 수렁에 빠져 버리
고야 말았다. 늙이이와 여자는, 아니 나 마져도 창밖에 매달려 있는 나
의 가벼운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는데
그 시간은 너무도 지루하게 지속 되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지루하
게 느껴졌던 서로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은 찰라였을 뿐이었다. 싸
구려 홍콩영화에서 보여지는 슬로우모션처럼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지난
다음 우린 한꺼번에 놀라 안에서는 뒤로 나 자빠질뻔하고 나는 밖에서 하
늘에서 땅으로 나 자빠질뻔했다.
나는 이제와서 생각하건데 그때 그 모든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밧줄
에 매달려 잠깐 졸며 한순간에 느껴졌던 환상감정이라 생각을 우겨잡고
그런 모든 감정들을 무시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밝히건데 그
것은 18층에서 밧줄에 의지해서 졸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이것은 특
별한 경험이었고, 내 의식속에서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나를 괴롭히는
추억중에 하나이다.
결정하기 전에 더듬어 보았던 짧막한 에피소우드를 들춰본다고 해서 지
금 내 머리속의 혼돈스러움에 도움이 되는것은 없다. 단지, 그 이유때문
에 두가지의 고민을 짊어지고 이렇게 27층의 유리창밖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 내 부인이 되었고 3년이란 기간동안 부부의 끈질긴 매듭을
움켜쥐어 왔다. 그러나 나는 그 짧은 삼십분간의 세영혼중에 한 영혼을
용서치 못하고 있다. 늙은이와 내가 함께 공유했던 그 기억, 나는 도저
히 용서할 수 없다. 늙은이의 영혼도 용서할수 없고 그녀의 영혼도 용서
할 수 없지만 실수로 뛰어 들었던 내 자신의 영혼은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두가지의 고민,..............
가벼운 존재, 존재의 가벼움.... ,,, 특수성, 보편성.....
그것이 문제로다.
노 재 명 (no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