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숨겨둔 남자 < ? >

                                                        1995. 8.24.
 
                                                        <rainblue> 
" 어떻게 하면 결혼하지 않고 살수있을까? " 하는 생각이 39.7도의 살인
적인 대구의 더위를 이기고 있을즈음에 예기치 않은 일이 나에게 벌어지
고 말았다. 
세상일이라는게 영화나 드라마처럼 예고편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
만 결혼하고 싶지 않은것과 사람이 좋아지는것 아니 남자가 좋아지는것
은 전혀 별개인 모양이다.  
그래 난 한남자를 좋아하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비밀이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물론 그남자에게 허락조차 받지 않은채 내마음속에 숨겨둔
남자로 만들어 버릴작정인것이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건 이로써 이미 비밀일수 없을테
지만 그가 누군인가는 이세상에 나만이 아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두고 싶
다. 
이런바 이런걸 짝사랑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27살먹은 여자가 하기엔 참 
유치한 사랑의 형태라고 할지라도 이 은밀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짝사랑에는 일단 시간이나 공간이 초월될뿐이 아니
라 돈한푼 안드니 경제적이랄수 있고 실연당할 염려도 없으며 상대편의
허락같은건 필요없고 일방적이라도 내자신이 주체이니 이 얼마나 좋은 
사랑인가?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기왕이면 접촉사고라도 일어나주길
기대하는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난 그보단 나만의 은밀함을 포기하고 싶
지는 않다는게 나의 대답이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 할까하는데 어떤지?
그럼 전부들 눈이 쏟아질만큼 크게 뜨시고 그가 누구일찌 추리해 보시기
를...
하지만 아무리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내가 주절거린다 해도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눈치채지 못할거라고 자신하는데 대해 불만있남? 
내스스로 내사랑을 훔쳐볼 기회를 제공해 주고싶어 입이 근질거리는건지
어떤지 나두 참 주책바가지라는걸 스스로 자인하면서 훔쳐보기 게임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정말 별걸다 떠벌리네! 요즘시대에 짝사랑하는게 무슨 자랑이라구?
어쨌던 요즘은 PR시대아닌가! 그리고 사실 훔쳐보기만큼 재미있는것도 
없잖아?

그남자. 지금부터 그남자라고 호칭하기로 한다. 이남자는 여지껏 내가 
좋아해왔던 남자들과도 이상형과도 전혀 동떨어진 남자임에 틀림이 없
어.
일단 내가 20살즈음에 좋아했던 남성상이랄까 그런걸 언급하자면 일단
80년대 후반엔 나오지도 않았던 롱다리란말이 어울리는 180센티정도의 
기다란 키에 내허리만치 허리가 가늘고(물론 요자로서야 내허리가 굵긴
하지만 남자가 내허리굵기면 가늘지,모!),그당시에 흔치 않았던 긴 장발
(70년대 막기른 장발이 아니다.)얼키설키 풀린 낡은 청바지가 요즘 게스
광고의 모델처럼 섹시하게 어울리는 그늘진 눈을 가진 비오는날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남자를 좋아했었지.
물론 그 남성상에 가까운 남자친구들을 사겨보긴 했지만 그들 역시 나
만큼이나 자유를 그리워했던바 지금은 서로 갈길을 찾아 헤어져서 잘먹
고 잘살고 있으리라 믿어마지 않아.
하지만 그남자는 요즘 통신주문으로 팔고는 하는 남성용 하이힐을 사신
는다 해도 기다란 키라고는 봐줄수 없을것같단말야. 그리고 섹스어필한
광고효과를 노리고(?) 청바지를 사면 성인고객들에게 콘돔을 나눠준다는
닉스진청바지을 입어도 절대 섹시해 보일것 같지도 않고말야. 
그렇다고 요즘에 내가 이상형이라고 주절대고 있는 허리끈따라 삼만리에 
해당되는 넉넉한 남자는 더군다나 아닌것 같고 사실 이제서야 말이자만 
내가 이남자를 처음만났을때의 첫인상은이랬어. 
본인이 절대로 알아차릴리는 없으니까 말이지만 " 에고 댁도참 그얼굴로 
살아가려면 나만큼은 고생하시겠우!"였으니 외관상 성큼 이남자가 좋다
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면 난 아마도 비도 안내리는날 차타고 달리다가 
안테나에 벼락맞는꼴을 당해도 쌀거야.
어떻게 만난남자냐구? 미팅? NO! 이나이에 미팅하리? 선볼나이도 이제 
바람과 함께 지나갈판인데 웬미팅? 그렇다고 맞선은 더더군다나 아니고
그렇다고 체팅하다 만난 남자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오다가다 눈총쏴서
헌팅한 남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럼 친구애인? 오빠친구? 언니친구 애인? 모두모두 아냐. 그남자를 처
음 만난건 내가 좋아하는(여기서 좋아한다는 말에 오해없기바람. 요즘은 
요자가 여자 좋아한다면 레즈비언으로 모는 경향이 있어 밝히고 지나감) 
여자아이가 남자만날때 별책부록으로 따라가서 얼굴 마주친게 처음이었
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 별책부록...
그래서 나도 그사람 몰래 훔쳐보기에 재미가 들어가고 있지. 알면 재미
없잖아. 솔직히 나만큼 일그러진 세수대야에는 흥미가 없었어. 어디 마
주보며 거울아 거울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깐말야.
사실 둘이 마주볼수 있는 시간도 없었지만 그는 나를 몰라도 난 그를 조
금씩 알아가고 있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물론 난 이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지만 기왕이면 싸움
에 지고는 못사는게 내성미 아니겠어?
일단 그남자는 속도광이다. 아마도 아우투반을 달릴 기회가 있다면 속도
계 끝까지 밟아보고 싶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남자들은 다들 
속도광인것 처럼말야. 남자들의 자동차와 속도에대한 열망은 여자의 보석
에 대한 집착 만큼이나 대단할거같아. 
그는 노래도 잘할것같은데 아직은 윤종신의 노래를                                                                                                                                                                                                                                                                                                                                                                                                                                                                                                                                  모르겠고 아마도 그역시 
사람들과 잘어울리는 그의 성격만큼은 마시지 않을까하는데 정확한 정
보는 아냐.
적당히 생기고 속도광에 노래잘하고 애연가에 성격좋은 남자는 세상을 털
어보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테니 여러분이 아무리 추리를 해도 내가 
숨겨둔 남자를 찾아내는건 불가능할테니 포기하시고 훔쳐보기로 만족하시
기를 바란다. 
쓸데없이 내가 이러이러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주절댔지만 결정적으로 그
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해간것 같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아마도 이세상의 글들은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할만큼 그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하고 싶은일은 글쓰는거였지만 그게 소설이든 아님
이런 주절거림이던 넋두리이던 상관없이 한동안 전혀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써지지가 않았다.
거미가 더이상 거미줄을 뽑아낼수 없어진것처럼...
난 겨우 희뿌연 흙탕물만 뽑아내고 더이상 물이 고이지 않는 조그만 웅
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책하며 또아리뜬채 매일 매일 잠만 자고 싶었
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남자때문에 난 자꾸만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쓸데 없는 주절
거림이든 아니던 상관없이 자꾸만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그는 내속에 
깊은 우물처럼 내속에 숨어서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조
심스럽게 풀어준다.
난 이제 숨을 쉴수 있을것 같다. 아주 넓게 가슴을 열어 세상을 아니 내
가 아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만이라도 내이야
기를 들어줄것만 같아서 조금씩 이렇게 그에 대한 수다나나 주절거리는것
이다. 그가 그립다. 그립다.

 
"자~이제 내 숨겨둔남자를 찾아내셨는지?"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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