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출입제한시간
나무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밀고 들어간다. 카페 <스크린>엔 그이름처럼
대형스크린이 걸렸있었다.
검은색 카죽소파, 금속구조물로 만들어진 천정에 늘어떠려진 철제조명
시멘트구조물로 된 벽장식에 "크라잉게임" "늑대와춤을" "나인하프위크"
"더티댄싱"의 대형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6시5분이었다.
선텐한 등을 드러낸채 잔뜩 머리를 잔뜩틀러올린 여자의 뒷모습들만
보였을뿐 혼자앉아 있는 여자는 카운타옆 전화박스에서 전화를 하는
여자하나뿐이다.
"또 립스틱 늘어놓고 뭘바를까 고민중인 모양이군...쯔쯔..."
정면에 보이는 대형스크린말고도 사면 어느곳에나 눈닿는곳이면 작은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같은 화장을 한여자가 화면안에서
붉게 칠한 입술을 삐죽내밀며 화면밖으로 기어나올것같았다.
"이여자가 구미호라는 영화보자더니만 화장대앞에서 여우짓하느라 시간
두 안지키구...벌써 15분이나 늦었네...칫~"
문이 열리고 무릎위 15센티가 넘게 올라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다리가 보여서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나타난 짜증을 지우며 손을
들었지만 미영은 아니었다.
"에잇...도대체 뭐하느라 늦는거야?"
전화카드를 지갑에서 뽑아 거칠게 카드전화기에 꽂고 버튼이 부서져라
두들겨댔다. 신호가 8번쯤 울렸을때야 숨찬 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야! 지금이 몇시야? 뭐하는거냐구!"
"나 좀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중이었어. 좀만 기다려. 금방갈께 응?
자기야...응응?"
"됐어. 오지마!"
하면서 수화기를 던지듯이 내려버렸다.
'지가 조금만 불리하면 자기래지?'
52년만의 최고기온이라는 39.4분의 기온이 정말 실감났다.
안그래도 더운데 정말 마누라라고 하나있는게 더 덥게 만든다고 홧김에
안주도 없이 밀러를 5병시켰다.
온몸이 맥주로 가득차 버린듯한 기분이었다. 맥주를 5병째 들이키고 있는
데 아까 들어올때 벌거벗은 등을 보였던 여자가 잔을 들어올리며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돈좀 들였서 선텐을 했는지 그여자가 의도적으로 탁자에 팔을 기대인채
드러내놓은 가슴선도 검은 실루엣으로 취기어린 창섭의 시선엔 유혹으로
보였다.
마주 잔을 들어 윙크를 보낼까하는데 허리께가 짜릿하게 진동이 울렸다.
'칫...꼬옥 중요한 순간에 분위기깬단 말야. 내가 삐삐친다고 전화할것
같니? 나두 자유다 자유...씨~'
"저 혼자신거 같은데 같이 한잔 어때요?"
어느새 여자가 건너와서 자리에 앉고있었다. 여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피네스였다.
'젠장...하필이면 피네스야. 마누라 생각나게 하네...지독히도 피네스를
피워대는 내마누라...'
하는 순간 또다시 삐삐가 울려댔다.
'이여자가 삐삐자주 치면 임포된다는것도 모르나? 그래 게속쳐라쳐!
나 임포되면 누가 억울한지!'
"집에서 여우같은 마누라가 호출하네요...전 이만 ..."
뒤에서 여자가 뭐라고 욕을 하는것 같았지만 그냥 돌아서 나왔다.
미영은 샤워를 끝내고 게운한 표정으로 장미향이 달콤한 샤워코롱을
두들기며 한손으로는 삐삐를 계속 쳐댔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오호라...반항한다 이거지? 그래봐야 기껏 맥주나 몇병마시구 휘청이
며 돌아올께 뻔하지~'
대구는 정말 덥다. 특히 오늘은 미영이 태어나기도 훨씬전인 42년의 40도
라는 기온이후 첨인 39.4도라는 기상천외한 날씨인것이다.
사실 약속시간인 5시전에 일어나긴 했지만 창밖에 모든걸 태워버릴듯한
태양을 보는순간 나갈생각이 싸악 사려져버리고 만것이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는데 그는 삐삐를 쳐도 연락이 없고 아직 들어
오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뭐 걱정할건 없다고 미영은 느긋하게 CD를 고르고 있었다.
오늘은 미영이 차를 이용하는날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술을 마셨대도
음주운전할 염려는 없는것이다.
사실 말이지만 음주운전은 여자들이 더 많이 한다. 미영이도 상습범중에
한명이다. 요즘처럼 더운날엔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어 И수
가 없는데 어쪄란말인가? 여자운전자들은 음주 검사를 잘아는걸 알고
미영도 때때로 술을 마신다. 특히 비오는날은 공치는날이 아니라 술마시
는 날인것이다. 음주단속하는 경찰들이 비를 맞으며 단속하지는 않으니
까 말이다. 아! 걱정마시라 그렇다고 음주단속해서 걸릴만큼의 술은
마시지 않는다. 겨우 맥주 캔의 반정도를 마셔서 목을 적시울뿐이니까.
그건 그렇고 이남자는 왜이렇게 안오는거람 하면서 미영은 드뷔시의
"바다"를 듣기 시작했다.
이렇게 더운날엔 이런곡을 들으며 바다를 떠올리는게 좋은 피서법같아
서였다.
미영은 침대에 누워 천정을 올려다 보다가 일어나서 창가에 놓여진
작은 탁자위에 술병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그리고 술잔도 2개.
방안에 모든 불은 꺼놓았다. 창밖에서 깜박이는 네온사인만이 유일한
조명일뿐이었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미영은 꼼작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다른방에서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대자 겨우 창섭은 포기하고 주머니를
뒤져서 촛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몇번이나 실패한끝에야 겨우 열쇠를
밀어넣는게 보지 않아도 뻔했다.
"뭐야? 남편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잔다 이거지? 도대체가 말이야~"
하지만 창섭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미영이 두손을 목뒤로 두른채
입을 맞춰왔으니까.
창섭은 온몸이 전원스위치가 켜진것처럼 확 달아오르는걸 느꼈다.
화내고 어쪄구 하는것 모두 망각의 커튼속으로 사라져버린채 그녀와
의 키스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드뷔시의 바다가 둘사이에서 붉게 충혈된채 파도를 일으키며 출렁
대고 있었다.
"자기 술한잔 할래?"
"술은 무슨...일루와..."
52년만의 더위속에 36도짜리 인간난로 두개가 39.4도의 기온을 기죽이
며 맹렬하게 수은주를 올라가게 만들고 있었다.
"띵똥~"
초인종이 한번 울리더니만 웬만하면 나가지 않고 버티려니까 1초간격으로
눌러대는거다. 으이그...지겨워.
세상에 우리의 이세를 만드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방해자가 등장하다니!
하면서 투털투털대며 창섭과 미영은 후다닥 집히는대로옷을 챙겨입고 불을
켰다.
"뭐하느라 이렇게 문을 늦게 열어? 더운데 맥주나 한잔하자!"
진호가 맥주병을 잔뜩들고 문을 밀고 들어오다가 두사람을 쳐다보더니
멍한 표정으로 멈춰서버렸다.
그시선에 놀라 미영과 창섭은 서로를 쳐다보니 급히 옷입느라 미영은
창섭의 트렁크에 와이셔츠를 입은채이고 창섭은 미영의 긴티셔츠밑으로
털이 부숭부승한 다리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헝크러진 머리칼하며 미영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꾸러기인 진호
는 금새 눈치를 채고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벅벅 긁어대는거다.
"이런...내가 불청객이군...쩝!"
"흐...마져!앞으로는 문밖에 푯말을 걸어둘께.노총각선생..."
"푯말? 뭐라고 써붙일건대?"
"출입제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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