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내리는 만나고 싶지않은 남자 %%%%

                                                    1995.  8. 25.

                                                     < rainblue > 


 어느 화장품광고에서 심은하가 나와서는  가을에는 블랙커피를 마시
고 비노쉬처럼 웃으며 아이스아이스 스모키인가 뭔가 하는 거무티티한 
립스틱을 발라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리는날엔 비노쉬처럼 웃지는 못해도 그 
거무티티한 립스틱을 바르지 못해도 블랙커피만은 마시고 싶어진다.
기왕이면 창이 넓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세상을 내려다볼수 있다면 좋
겠지만 그럴수 없을바에야 차라리 소주방에서 알탕에 레몬소주라도 
마셔야만 할것 같다.
하지만 블랙커피든 레몬소주든 마실려면 우산하나 챙겨들고 마음닿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세상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것은 아닌 모양
이다.
남들은 백조다하면 팔자가 좋으네 어쪄네 하지만 사실 나같은 백조는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백조도 아니고 미운오리새끼에 나오는 백조도
아니고 동화에 견준다면 역시 신토불이로 "콩쥐와 팥쥐"에 나오는 콩
쥐이거나 물건너 "신데렐라"의 주인공 신디정도일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로 나있는 유리창을 올려다보니 무거운 빛깔로 조
금씩 내려앉는걸 보고 음악이나 들으며 게겼다가 비내리기를 기다려서 
오후에 나가봐야지 하며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돌아눕는데 불청객
이 허락도 받지않은채 내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는거다.
불청객이란 바로 내가 팥쥐엄마로 부르는 나의 어머니시다. 울아빠가 
새장가들어서 데리고 들어온 자식도 아닌데 울엄마는 거의 날 의붓자
식 취급이다.
그예로 오늘아침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읊어대
는 대사가 나를 절망케하고 만다.

"엄마 지금 감포놀러가는데 지금일어나서 빨래널어놓은거 걷고 청소
좀 하고 약수터가서 생수좀 길어놓고 냉장고에 있는 고기 좀 양념해서 
재워놔라. 그럼 엄마 간다~"

몇가지 안되는것 같지만 그많은 일을 하고나면 난 언제나 집밖으로 
나가볼수 있을까 하는생각에 그만 눈앞에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졌다.
이런지경인데 내가 울엄마를 팥쥐엄마라고 부르는데 불만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난 당당히 엄마에게 "팥쥐엄마"라고 야유를 하지만 그
소리가 전달되기도 전에 벌써 문은 닫히고 있었어.
이정도면 거의 콩쥐팥쥐스토리랑 비스무리 한거 아니겠어?
물론 거부권행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만일 엄마가 돌아와
서 하나라도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거의 날밤새워 기나긴 잔소리의 
리바이벌을 들어야하는거야. 이젠 내가 녹음기대신 외울정도가 되었
으니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짐작이 갈거야.
팥쥐엄마가 퇴장하고 난 텅빈집에서 난 나홀로 외로이 고기와 전쟁을
하고 오락가락 하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비닐색속에 물통을 넣어지
고 우리집 뒤에 있는 산밑 약수터에 물을 길러가야 했어. 정말 두꺼비
만 안나왔지 콩쥐랑 똑같지?
정말 이럴땐 두꺼비같은 애인이라도 있으면 빨래시키고 청소시키고 그
럴건대 아쉬워도 어쪄랴 팔자려니 하고 두꺼비대신 개구리라도 전화한
통 해주기를 기다릴수 밖에...
두꺼비없이 그많은 일을 헤치우고 누군가 전화라도 해주지 않을까 전
화에 눈을 달고 비노쉬처럼 웃기위해 화장을 했다. 거무티티한 아이스
아이스 스모키인지 뭔지 대신에 젖은듯한 레드로 입술을 그리고 발가
락을 꼼지락 거리며 유선방송이 나오는 TV 리모콘을 눌러댔다.

"따르르릉~따르르릉~~:~~~"

정말 빗소리만큼이나 상큼한 전화벨소리지 뭐야? 그래봐야 두꺼비일
리는 없고 꿩대신 닭이라고 개구리임에 틀림없다고 추리하며 전화수
화기를 들어보니 역시 개구리였어. 예리한 나의 추리력!

"뭐하니? 저녁이나 같이 먹을래?"

`뭐하긴?오지도 않을 두꺼비한테서 걸려올 전화 기다리다가 니전화받
는 거지 물어보면 뭐하냐? '

"응. 그러지 뭐!"

별로 썩 내키는 파트너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 우아하게 저녁먹고 
디저트로 블랙커피를 마시며 비내리는 거리를 내려다 볼수는 있을거
라고 기대를 하고 개구리의 차를 탔지.
역시 인생에도 예고편이 있어야 할까봐. 잠시후 난 차라리 집에서 혼
자 라면 끓여먹고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비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는게 
나았을거라고 차마 땅을 치며 통곡은 못하고 벌레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난 빗방울이 줄무늬를 만드는 차창만 바라본
거 있지?
개구리는 자기 단골집이라며 요즘 시내에 한창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춘천 닭갈비집앞에 차를 세우는 거였어.
바로 그저께 친구랑 닭갈비 먹었는데 비내리는날 꼬옥 버얼건 닭갈비 
먹으며 운전한다고 술도 안마시는 상대를 앞에 두고 혼자 소주를 홀
짝여야 하는게 끔직이도 싫어서 고개를 짤랑짤랑 어린송아지마냥 흔
들어댔더니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수성못쪽으로 진로를 바꿨어.
라디오방송에서 한창 선전을 많이 하는 "레닌그라드"라는곳으로 차를
집어 넣길래 자기분위기에 안맞는곳에 몇번 드나든 모양이라고 생각
을 하며 따라들어갔더니 세상에 라디오에 나오길래 한번 와본거래나?
그다음 장면부터가 나의 신경을 북북 긁어놓기 시작해서 디저트로 커
피를 마실즈음에는 커피가 한약보다 더 써지고 있었어.
메뉴판을 보고 함박을 시킨댔더니 그냥 같이 그걸로 한다며 주문을 
하고 나니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왔어. 
싸구려와인일게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모금 마셔서 식사할
기분을 돋으는데 이개구리는 그게 뭐 소주라고 생각하는지 원샷을 해
버리는거야. 그정도야 뭐 평소 술마시는 습관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
고 넘어가기로 했어. 나 그래도 속좁은 여자는 아니거든.
그런데 내가 시킨대로 야채스프가 나오자 스푼도 아니고 포크로 커피
젓듯이 후추며 소금을 집어넣어서 저어대는거야. 그정도도 식습관이 
그런모양이다 하고 난 참아냈어.
그리고 고기가 담긴 접시와 샐러드, 빵이 나왔는데 기가막히게도 칼
로 고기를 4등분하더니 그냥 줄줄 흘리며 먹는거야. 그정도도 참아줬
어.
그런데 샐러드를 빵속에 집어넣고 거기다 쨈을 발라먹을때는 완전히
식욕이 달아나버린거 있지?
그런데 그걸 나에게 내밀며 먹으라는거야. 내빵까지 다먹어버리고는 
한다는말이 가관이야.

"근데 밥은 언제나오는건대?"

난 기가 막혀서 더이상 음식이 먹혀지지 않아서 먹는걸 바라보고 있
었는데 내가 안먹는다니깐 내음식까지 모조리 헤치워서 우리테이블위
에 있는 접시들은 마치 설걷이를 한것처럼 깨꿋해진거 있지.
그가 빵조작으로 접시들을 닦아서 먹어치운거야. 세상에...
그래도 난 인격을 추스리고 인내심을 다독이며 디저트로 나오는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는 참아주려고 했어.
그런데 기어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스푼을 쪽쪽빨며 먹어
대던 그가 아이스크림 한조각을 내커피에 집어넣었을때는 도저히 참
아낼수가 없었어. 그지경인데도 내가 참았어야 하는건가?
역시 맘에 안드는 상대는 4번째 만나는게 아니었나봐. 그저 순박하고
착해보여 거절할수 없어서 만났더니만 오늘의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순박하고 착한건 좋지만 끔찍한 음주습관이며 식습관인지 아님 무지
의 소치인지 모르지만 도저히 그 무신경한 위생관념까지 참아줄수가 
없는거야.
아~차라리 마음와 닿는 사람과 라면을 먹더라도 커피한잔 여유롭게 
마실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만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어.

"비내리는날엔 제발 저런 남자 만나지말게 하옵소서 신이여!"


                          < 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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