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배와 기집애의 사랑보고서>




6. 기억속의 만남 그리고 ...



"여..보세..요?"

잠이 덜깬 불명확한 목소리로 겨우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옆에 놓여있는 시계는 8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누구야? 이새벽에...참나 미인되겠다는데 도움을 안주는군!'

"여보세요...죄송합니다만 거기 김보미씨 있으면 좀 바꿔주시겠어요?"

'누구지? 첨 듣는 목소리같은데...'

"네.제가 보민대여..누구시죠? "

"나 한.진.성 이라고 하는대 기억하실라나? 아니면 롱다리라면?"

'이크...이게 어떻게 된거지? 전화번호를 누가 노출시킨거야.
역시 보안유지가 필요한 세상이군...'

"아...네. 어제 그..사람인가보군요. 생물과 다니는..."

"오호...아주 여유있게 받으시는데 도망자께서는 편히 주무셨는지요?"

'참나..원. 하긴 굼벵이두 구르는재주는 있대더니 그래도 정보는 
빠른모양이군...이런 이를 어쪄다...'

"네...미인은 잠꾸러기죠.아마.근데 무슨일?  특별한 용건 없으면
끊었으면 하는대요. 그럼..."

"아~~~~~~잠깐만...사람말은 들어보지도 않구 뭐야...!"

"난 할말 없으니까 끊죠." 

딸각.

'에고 인제 큰일 났네. 전화번호 알았으니 복수한다고 시시때때로
전화해댈텐데...우선 당장 전화코드부터 뽑고 봐야겠군.'

일단 잠을 더자고 나서 그다음일은 그다음에 생각해야지 하고 
보미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잠을 청했다.





코끝에 스미는 블루마운틴의 향기를 느껴면서 보미는 4년전 5월의 
기억속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처음엔 좋았던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작은 장미봉오리가
그려진 본차이나 잔을 선반위에서 내려왔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만은 귀족처럼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용돈을 아껴서 영국산 본차이나잔을 구입했다.
덕분에 일주일은 궁핍함을 면하지 못했지만 일주일동안의 궁핍함보다는
우아한 본차이나의 곡선이 더 오래도록 자신의 눈을 풍요롭게 할거
같다는 생각에서 구입한것이었다.
9평짜리 방이2개인 임대아파트에 엄마랑 둘이 살지만 아침의 커피시간만은
귀족이 되고팠는지도 모를일이지.
벌써 엄마는 출근을 한모양인지 집안은 가끔 욕실에 물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뿐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주차장에서 위험하게 농구연습을 하는 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그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무릎은 많이 안아프니? 잠도 들깬모양이군 더듬거리는걸 보니..."

'그럴리가 없지...이사한지가 언젠데' 하며 기대했던 자신에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응 좀전에 일어났어. 무슨일있니? 잠깐만..."

베란다쪽에서 톡톡 소리가 나서 수화기를 들고 나가봤더니 비가 내렸다.

"미나야...창밖을 봐. 지금 비내리나봐. 오랫만의 봄비구나..."

웬지 보미는 빗소리에 마음이 싸아하니 서늘해짐을 느꼈다.

"미나야 우리 지금 만날까? 혹시 거기 아니? D백화점옆에 "뮤즈" 라고"

"어디라구? 아~ 거기...아직도 그집있니? 알긴 하지만 하필 거기니?"

"으응...그냥 한번 가보고 싶어져서..."

빗소리가 조금 더 커진거 같았다. 보미는 옷장을 뒤져서 한구석에 걸려있는
검은 원피스를 꺼내봤다. 그리고 핑크빛 립스틱도.
빛방울이 그대로 보이는 투명한 우산을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딸랑...딸랑...'

"뮤즈"의 출입문엔 여전히 딸랑이는 종이 4년전 여느날처럼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이른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모양인지 카운타의
여자아이가 꼬박거리며 졸고 있을뿐었다.
미나가 올려면 아마도 한 10분쯤 기다려야 할거 같았다.
낮은 천정을 조심하면서 다락처럼 되어 있는 2층에 올라가 익숙했던
자리에 앉아보았다. 예전의 그낙서도 약간 빛바란채 그대로 였다.
 
"딸랑..딸랑......"

누군가 보미처럼 이른아침에 약속이 있는 모양인가 보았다.
보미는 고개를 돌려 종이 울리는 문쪽을 내려다 봤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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