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새고원 화왕산으로 떠나는 가을여행 ***


화왕산으로 가기로 한 일요일을 앞두고 며칠을 눈에 아른거리는 억새밭
의 풍경에 몸살을 내며 일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화왕산의 억새밭 풍경은 언제나 가을문턱에서 떠올릴만큼 그곳은 가을스
러웠거든...하긴 몇년전에 가봤던 기억에 약간의 환상이 덧붙여져서 그런
연상을 불러 일으켰을테지만 말이다.
맨날 일어나기 싫어서 꾸물대면서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다가 웬일로 
엄마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일어나서 화장하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하면 울
엄마는 다른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은 어디니?일찍와!"

하긴 이젠 익숙할때도 되었지. 출근할때는 그렇게 일어나기 싫어하면서도
여행갈때는 더일찍 일어나는 나의 체질을 벌써 몇년째 겪어내었으니 엄마
도 이젠 여행가지말라고 말리는 일은 이미 포기해버린모양이었다.
카메라 하나만 달랑메고 집대문을 나서니 벌써 미영이와 영재녀석이 타우
너 문을 열고 우리집 대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찍 못나오니?으이그...꾸무적대기는~"

브레드의 "If"를 들으며 빨간 타우너를 끌고 화왕산을 향해 출발을 했다.
화왕산이 있는 창녕을 가기위해서는 구마고속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세명다 아침을 먹지 못한채 출발을 한터라 요란스런 꼬르륵소리가 차안가
득 메울정도였다. 서대구 톨게이트로 가기위해서는 앞산순환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앞산순환도로에 있는 [대덕식당]의 커다랗고 시커먼 솥에는 뼈다구
를 삶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냄비며 주전자를 들고 소피국을 사러 온사람
들로 진을 친다. 대덕식당앞에는 이른아침인데도 고구마며 옥수수, 번데기
를 타는 난전을 벌어져 있어 음식냄새며 사람들의 발자국소리로 아침을 깨
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번데기1000원어치와 송편2000원어치를 사가
지고 구마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우리들의 허기진 시장기를 채웠다.
김밥을 준비해야 했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전부다 서로에게 미루다보니
졸지에 아침부터 번데기를 먹게 되는것이다.
하긴 토요일 데이트 안하고 집에서 궁상맞게 김밥을 말고 싶은 사람이 있
다면 참 슬픈일이겠지만 말이다. 
나역시 그전날 영화를 보러갔다가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김밥을 싸기는
무리가 있어서 포기를 해야만했다. 사실 시간이 있어도 김밥을 싸지는
않았을거 같지만...흐흐~
아무리 밟아봐도 시속80km이상 속도를 못내는 우리의 타우너는 1시간 30
분쯤 달려서 창녕에 도착했을땐 지쳐서 헥헥거렸다. 
화왕산은 창녕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시내버스를 타도
겨우2-3정거장정도 밖에 되지를 않는다.
그곳주민에게 물어서 골목길로 화왕산입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을땐 이미
우리말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어정대고 있었다.
화왕산진입로입구에 있는 창녕여중고 운동장은 이맘때 주말이면 임시 주
차장으로 사용되는 모양인지 차량은 거기에서 진입이 금지되었다.
우린 여전히 카메라 하나와 생수통만을 챙긴채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다시
차를 타고 올라온길을 내려가야만 했다.
도져히 번데기와 송편몇개로는 우리가 산정상에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고
말해야 옳을것이다. 
화왕산진입로입구에 이르는 골목에는 조그만 가게마다 전부 아줌마들이
거리에 나 앉은채 김밥을 말고 있었다. 일부러 김밥을 준비해가지 않아도
금방말은 맛난 김밥을 먹을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람은 셋인데 김밥은 4개를 사가지고 한개는 필림을 사러 골목을 내려가
는 동안 다먹어치우고 있었다. 김밥이며 고추장이 벌건떡볶기를 파는 골목 
줄지어선 조그만가게에는 등산복차림의 사람들이 벅적대며 선채로 먹고 있
었다. 우리도 거기 껴볼까 하다가 너무 배를 불리면 산에 오르지 못할거라
고 자재를 해야만 했다. 
갈대밭에서는 흑백사진이 잘어울거 같아서 흑백필림을 사려고 했지만 그
많은 가게에 다 물어봐도 흑백필림은 없었다. 포기를 하고 돌아서려다가
골목어귀에 작은 사진관을 발견해서 다행히도 흑백필림과 칼라필림을 다
구할수가 있었다.
다시 산입구까지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김밥하나를 더 축을 내고 있었고
산입구에서는 너무 잘익어 빨간속살을 드러낸 석류를 살수 있었다.
그 달콤하고 떫은맛을 입안가득 채우며 잘포장된 길을 걸어 입구에서 처
음 만날수 있는 너무도 현대적인 산장을 하나 지나쳐서 계속 시멘트포장
된 길을 800m나 걸어야했다.
산입구에서 800m쯤 지나면 화왕산장을 만날수 있다. 예전엔 어욱새찻집
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찻집이 있었지만 몇년전에 불법건축물로 철거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예전의 찻집은 굵은등나무로 얽키설키 엮
어서 만든 사발을 엎어놓은 형태의 움집이었는데 그정겨운 풍경하나가 
사라져버린 아쉬움을 말끔히 단장해놓은 산장으로는 대신할수가 없으리
라...
화왕산장에서는 물도 얻어마실수가 있고 화장실도 갈수가 있다. 물론
예전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차냄새가 배어나올것같은 찻집이 산장뒤에
나즈막하게 숨어있었다.
정상까지는 3.2km나 남아있었다. 화왕산장부터는 비포장된 정겨운 흙냄
새를 맡으며 땀에 절은 등산이 시작되는것이다. 어제가 화왕산갈대제를
하는날이라서 그런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채 정체현상
을 보일정도로 등산로는 붐비로 있었다.
1시간30분이나 울퉁불퉁하고 가파르기 조차한 좁은산길을 걸어 올라갔
을땐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어있었다. 포기를 생각할정도로 우린 지쳐
있었다. 근간에와서는 이렇게 산을 오르는 일이 드물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앞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를 그대로 삼키면서
꿋꿋하게 바위를 짚으며 줄에 몸을 의지하기도 하면서 기어코 산정상
에 오르고 말았다. 산입구에서 정상까지는 4km정도이지만 평지에서의
4km와는 도져히 비교할수가 없는것이다.
산에 올라 눈에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의 정경이라니...
마치 추수를 눈에 앞둔 농부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누렇게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
화왕산은 태백산남단에 위치해있고 산높이는 해발 756.7m로 산정상은
고원이다. 정상에는 임진왜란때 곽재우장군이 왜군과 싸워 큰공을
세웠다는 "화왕산성"과 "창녕조씨득성비"와 3개의 연못이 있다.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관룡산으로 갈수가 있는데 그곳에는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화한 도장으로 전하는 "관룡사"를 만날수가 있다.
화왕산갈대제를 하면서 갈대를 태웠는지 산한쪽은 시커멓게 갈대밭
이 타버린채 그자욱만 남아있고 재가 날리고 있었다.
우린 산을 오르느라 지쳐버린것도 잊어버린채 갈대를 헤치고 다녔다.
군데군데 우리가 갈대를 헤집고 들어선곳에는 연인들이 진을 치고
속삭이고 있었고 자리를 깔고 아예 누워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높은곳에 있는 큰바위에 자리를 깔고 발아래깔린 융단같은
갈대밭을 내려다보며 남겨서 끝까지 정상까지 가져온 김밥을 맛나게
먹어댔다. 
하늘에 가까워진 느낌으로 바다같이 푸른하늘을 덮고 누웠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덮고 누워있던 우리는 화왕산성을 걸어내려와
갈대속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누런갈대와 파란하늘과 빨간 등산복이
너무도 고운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갈대의 미로속에서 헤메던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채
2시쯤애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내려가는것도 그렇게 쉬운것만은
아니어서 여전히 정체를 보이는 인파속을 헤집고 어렵게 1시간만에야
겨우 화왕산장에 이르를수 있었다. 
화왕산장입구는 담쟁이덩쿨같은것이 얼켜있는 터널처럼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덩쿨터널을 지나 찻집에 들러
투박스러운 커피잔에 담긴 여러가지 커피를 섞은 그곳만의 독특한 커
피를 맛보며 우리들의 지친피로를 몰아내고 있었다.
다시 주차를 해놓은 창녕여중고까지 내려갔을땐 이미4시가 막 지나고
있었고 그대로 대구로 오지 않고 우린 조금더 남쪽으로 구마고속토로를
타고 내려가서 부곡으로 향했다.
유황온천인 부곡온천에서 그 미끈거리고 부드러운 온천물에 우리의 지친
심신을 담그고 온몸의 찌거기를 다 토해낼것처럼 한참을 탕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둑해진 고속도로를 달려 우린 대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마음속에 가득 억새밭을 채워넣고서 이가을을 출렁이며 살아낼것만 같
았다. 우리의 가을여행이 저물고 있었다. 저녁노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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