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반지/장편시리즈

[소설] ***** 자유시대 부부 ***** (32)

종이반지 2012. 1. 10. 22:03
32. 빤스소동 (2)

누군가 싶어 소리나는 옆자리를 쳐다보니 웬 낯선여자가 머리에 파마기

구를 잔뜩 감은채 이쪽을 마주 쳐다보고 있는것이다.

"네 근데 누구세요? "

"애~ 아무리 오랫만이래도 나 모르겠니? 나 정아야!"

"정아? 니가 정아라구? 세상에 너 변해도 너무 변했구나?"

"으응...몰라볼만두 하지.뭐! 나 대학2학년 여름방학때 수술했어. 쌍커

플이랑 콧대수술이랑! 그땐 좀 싸게 했지,뭐~ 넌 여전한거 같네~"

'그럼 그렇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만났을때만 해두 조그만게 하늘높은

줄은 모르고 땅넓기만 아는 체격에 단추구멍같은 눈매하며 있는듯 없는

듯한 코에 고3병 휴유증인지 엉덩이만 뚱뚱하두만~ 역시 여잔 변신의

천재야! '

"나 파마풀고 올때까지 좀 있어! 오랫만인데 차라도 한잔하자!"

하면서 세면실에 가는 정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영은 현대판 미운오리

새끼의 백조화현상과 성형외과 의사아저씨들의 위대한 칼질에 대해서 

감탄을 하느라 멍해진채로 긴머리카락이 잘려져 바닥에 떨어지는것도 몰

랐다.

"거울 좀 보세요. 요즘 유행하는 신은경 스타일로 잘라봤는데 어때요?"

치렁이며 허리근처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짧

은 커트머리의 여자애가 거울속에서 쳐다보며 씨익 웃는거다.

"후후...저 20과 1/2 나이같이 보여요? "

"레쎄 광고 신은경대신 나가도 되겠는대요,뭘!"

7번선생은 능글맞게도 "사랑을 그대품안에"에 나오는 마담아저씨 수준의

말투로 아부를 해대는거다. 으!닭살인거 아는지.원~

마침 정아도 머리손질을 끝내고 나오고 있어서 창섭을 만나기로 한 무크

에서 같이 커피라도 한잔 하기로 했다.

같은건물에 1층은 구두매장이고 2층은 카페,3층은 미용실인 무크는 전면

이 통짜유리로 되어있어서 거리에서 올려다봐도 창가에 있는 사람이 보

이게 되어 있었다. 2층카페 창가에 혼자 앉아서 담배연기를 피어올리는 

남자가 눈에 띄였다.

"미영아 저남자 이지적인 분위기지 않니? 우리 저옆자리 비어 있는데 거

기 앉자! 어차피 저카페 들어갈거잖니"

"이지적? 크큭~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일단 올라가자!"

구두매장안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걸어올라가서 카페 입구에 들어서자 

창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활짝웃는거였다.

"미영아 저남자 나보고 웃었어. 뭔가 좋은일이 생길거 같은 예감이 들지

않니?"

하면서 정아가 귓속말로 속삭이는거다. 미영은 웃음을 참으며 정아를 

그남자가 있는 자리로 데리고 갔다.

"창섭씨 내친구 정아야~! 아까 미용실에서 오랫만에 만나서 같이 왔어!"

"아니...니 애인이었어? 괜히 헛물켰다.애!"

"안녕하세요. 석창섭이라고 합니다. 애인은 아니구요..."

"그럼요?"

"한침대 사용하는 남편이랄까?"

정아와 같이 얼음이 유리잔안에서 빙산처럼 떠있는 커피를 마시며 두사

람이 같이 사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조잘거렸다.

"너 오늘 약속있니? 없으면 우리집에 놀다가~ 우리 오늘 빤스만 몇장사

면 볼일 끝나거든!"

"으응...그러지뭐! 근데 창섭씨 뭘 그렇게 잔을 계속 만지작 거리세요?"

"미영이가 글쎄 아침부터 빤스타령을 해대더니 이여자도 빤스좀 입혀야

할거 같네요..크크~"

하면서 가르키는걸 자세히 보니 창섭이 마시는 유리잔이 여자의 나체를

입체로 만들어진거였다. 육감적으로 튀어나온 가슴하며 히프라인, 그리

고 등줄기에 파인 라인까지 그대로 살려져 있었다.

잔을 잡으면 허리쯤이고 엄지손가락은 가슴쯤에 가도록 만들어진 섹시

한 유리잔이었다.

"크크...진짜네~ 우리 이런잔 몇개 사다놓을까?"


속옷매장에서 미영은 줄곳 여자용 팬티는 살생각도 안하고 남자용 트렁

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야~ 자기 웬일루 내껄 다 사줄려구 그래? 역시 남편챙기는게 아녀자의

도리라는걸 깨달은 모양이지? "

"삼돌이빤스고무줄 끊어지는소리 하고 있네! 내꺼고르는거다.왜!"

"남자용 트렁크를 입겠다구? 정말 깬다.깨~"

"얇고 색상도 화사하고 통풍도 잘되고 좋은데 이런것도 남녀따지냐!"

둘이 토닥거리는데 점원이 다가왔다.

"남자분 팬티 사실려구요? 요즘 잘나가는 디자인보여드릴까요?"

하면서 내미는 팬티들은 여자용인지 남자용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야한

디자인들이었다. 가느다라한 끈하나로 연결된 디자인이 눈에 띄여 미영

은 창섭에게 보여줬다.

"이거 자기 사줄께. 섹시하고 이쁘다.응응?"

"아니 남편을 스트립쇼 시킬일있니? 그거입고 목욕탕가서 망신당할일 있

니? 무슨 남자용 팬티들이 이렇게 야하고 노출이 심하냐? 난 그냥 예전

에 나왔던 독립문이나 쌍방울표 빤스가 더 좋더라. "

결국은 미영은 첨에 고르던 화사한 무늬가 프린트된 트렁크를 4장골랐다.

물론 2장은 미영이꺼구 2장은 창섭이가 입을거였다.

쇼핑을 끝내고 정아와 함께 지하수퍼에 들러 하이트를 몇병 사가지고 집

으로 가는길에 토요일저녁 나홀로 집에 하고 있는 진호네에 들러 맥주나

한잔하자고 초대를 했다.

"우리집 조그맣다. 7평밖에 안되걸랑. 안방도 따로 없고 그냥 들어서면

침대가 보이구 그래..."

"소꿉장난같겠구나. 근데 너 너네 신랑 앞으로 감시잘해! 나두 아까 하

마트면 총각인줄 알고 유혹할뻔했잖니!"

"후후...총각같은 남편 좋잖아? 애인같은 아내와 총각같은 남편 우리 참

잘어울리는 부부지? 근데 진호씨는 왜 안오지? "

하면서 전화할려고 수화기를 드는데 진호가 들어서는게 보였다.

수염도 말끔하게 깍고 깨끗하게 다림질된 바지하며 방금전에 샤워를 했

는지 상큼한 냄새가 풍겼다.

"진호씨 어디 선보러가? 웬일이래니 정말? 진호씨 평상시대로 해. 

진호씨 요즘날씨엔 빤스가 정장이잖아!"

"맨날 지저분하다고 구박하더니 깨끗해도 탈이야! 그러는 누군 오늘 

내방에 빤스남겨 두고 갔두만!"

하는순간 창섭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것같았다. 미영이 그눈빛에 타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아니 이남자가 ...사람 잡겠네...내가 언제 빤스를..."

열대야 현상으로 달아오른 조그만 방안이 순식간에 북금곰이 지나간것

처럼 서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까 디스켓빤스 그냥 두고 갔잖아~"

"뭐....? 세상에 기가 막혀서 ~! 일루안와!"

창섭과 미영이 방안에 있는 쿠션이랑 벼개로 진호를 죽일것처럼 패고 있

는걸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한 정아는 멍청하게 파편이나 피하려고 벽

에 기대인채 쳐다보기만 했다.

맞으면서도 진호는 끝까지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치~ 디스켓빤스는 빤스 아닌가.뭐? 사람 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