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반지/장편시리즈

[소설] ***** 자유시대 부부 ***** (27)

종이반지 2012. 1. 10. 22:02
27. 맥주시음회 (1)

[자기만의방]

[당신곁에 자고 싶어요]

[불 좀 꺼주세요]

[마지막시도]

실팍한 모시카핏을 깐 방바닥에 주저앉아 미영이 짤막한 문구들을 중얼거

리고 있었다.

"그게 뭐니? 우린 맨날 같이 자잖아! 불안끄고 잔적있어? 난 맨날 성공하

는걸~ 그리고 우리방이지 자기만의 방이야? 도대체 뭐야?"

컴퓨터통신으로 아침조간을 훑고 있던 창섭이 미영의 중얼거림을 듣다가

의자아래로 내려앉으며 미영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항의를 해왔다.

"뭐냐면 말야? 자기랑 연극이나 한편볼까하고 신문뒤적이다가 문화란에

서 튀어나온 연극제목들이야. 너무 선정적이지 않아? 그리고 요즘 연극

에서 벗는장면이 참 많대며? 대구가 문화의 도시라구? 웃기지 말라 그래~

연극이라고는 서울극단 초청해서 엉터리로 공연하는 처지에 문화의 도시?

오늘 연극한편 볼까? 어때? 주말이잖아~"

"흐응...전부 제목들이 색깔이 있네. 자긴 뭘 보고싶어?"

"글쎄...퇴근하고 만나서 결정해!으악~ 자기 출근시간 15분전이다"

하면서 엎드려서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는 창섭의 허연궁뎅이를 찰싹때

리는거다. 

"아얏~ 세상에 남편 궁뎅이 때리는 마누라도 다 있나?아차차...이러구

있을때가 아니지~ 내 넥타이..내양말..손수건~"

동작빠른 미영은 벌써 양말이랑 손수건을 챙겨 손가락에 집어서 흔들고

있었다. 마치 투우사가 여유있게 성난소를 기다리는것처럼.

창섭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약속을 한 미영은 창섭이 출근한후에 거품을

잔뜩낸 수세미로 찬장속의 유리잔들을 꺼내어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현관앞에 줄지어 늘어선 맥주병들을 지하에 있는 수퍼에서 하나

에 30원씩 환불받아서 포테이토 씜을 하나 사가지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오토리버스로 작동되는 짐모리슨의 음악들을 들었다.

그리고 약속시간 1시간전 "The end"라는 곡이 흘러나올때쯤 유리잔을

목욕시키듯이 조심스럽게 바디클린져로 거품을 잔뜩내어 샤워를 했다.

오일을 바른 맨살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거울앞에 섰다.

커튼사이로 스며드는 오후3시쯤의 햇살속에 서있는 나신의 실루엣!

나르시스가 자기모습에 반해서 연못속으로 뛰어든것처럼 미영은 거울속

으로 들어가버릴것처럼 자기의 나신에 취해있었다.

전화벨 소리만 아니라면 오래도록 그렇게 정지된 상태로 있을지도 모른

다. 전화를 건사람은 역시 창섭이었다. 확인사살?후후...

"너 또 잔거지? 그럴줄 알았다니깐! 약속시간 20분전이니깐 즉각출발하기

바란다.오바! 알았나? 실시!"

"알았다.오바!"

손에 쥐고 있던 타월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고 미영은 하얀 티셔츠를 입

고 앞자락만 무릎쯤에서 자른 반바지속에 집어넣고 거울앞에 섰다.

입는데 겨우1분18초! 굽높은 운동화를 반쯤 신은채 엘리베이터로 뛰었다.

약속장소인 "T & G"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시간3분전.

자리를 잡지않고 미영은 화장실로 향했다. 7월의 태양처럼 선명한 써니

오렌지색 립스틱을 한번의 손동작으로 바르고 한줄 눈썹라인을 그린다음

핸드백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흔들었다. 그리고 머리에 모자쓰듯이

썼다. 짤막한 커트머리의 여자가 거울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

다. 순식간의 변신...굵은 웨이브로 찰랑이던 긴머리카락이 한가닥만 그

녀의 뒷목언저리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깥이 내다보이는 유리창가에 앉아서 공룡처럼 씩씩대며 창섭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초침을 재고 있을껄?

"20초에 담배 한개피야?" 5개의 꽁초가 누워있는 재털이를 가르키며 서

있는 미영을 창섭은 담배를 입에 문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누구세요? 백모씨네 외동딸 모미영씨라고 그여자 맞아요?"

"자기 마누라도 몰라보고 그러냐!어때? 영계같지?그치?"

"영계같은 소리하네. 냉동닭이 부활한거 같다..근데 너 머리카락 자른

거야? 흠흠..."

"왜 맘에 안들어? "하면서 가발을 순식간에 벗어버리자 물결처럼 긴머리

카락이 어깨위로 흘러내렸다.

"아니...가발이었어? 휴~ 다행다행...난 니머리카락을 사랑해...물론

오늘 그헤어스타일도 좋긴하지만!"하면서 미영의 날라오는 핸드백을 손으

로 막아냈다.

힐끔거리는 사람들 시선을 무시한채 미영은 손거울을 보며 가발을 다시

썼다. 마술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라져버렸다.

"우리 밀러 마시자...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

둘은 나란히 앉아서 밀러의 시원하고 부드러운맛을 목으로 느끼며 물좋

다고 소문난 이 락카페에 드나드는 기다랗고 세련된 여자들을 구경했다.

감각적인 분위기와 음악때문에 최근에는 토요일 오후에 이곳에 밀러를

마시러 오는 횟수가 늘었다. 

"밀러가 최고야..이부드러운 맛...아~시원해!"

"미영아 요즘 새로나온 맥주들도 괜찮던걸,뭐...우리도 취행바꿔볼까?"

창섭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늘밤엔 맥주시음회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연극을 보기로 한건 취소를 하고 "인투"에 들러 스파게티를 먹고 마늘빵

을 스프에 찍어먹고 깐소네를 들었다.

그리고 주차를 해둔 동인주차장으로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려

다가 그냥 나오고 말았다. 오피스텔지하 수퍼마켓에서는 1100원하는 맥

주가 편의점에서는 1300원한다고 미영은 괜히 방방떴다.

그냥 사면 좋으련만 하는 표정인 창섭의 표정을 무시하고 포장했던 맥주

병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나오는 미영은 씩씩했다. 

수퍼마켓에서 OB아이스와 카스 그리고 하이트를 각각 2병씩 바구니에 담

아서 창섭에게 들게하고는 게산대로 가다가 미영은 갑자기  OB아이스 2병

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것이다.

"왜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