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반지/장편시리즈
[소설] ***** 자유시대 부부 ***** (26)
종이반지
2012. 1. 10. 22:02
26. 미씨족 (3)
TV화면에는 지난번에 창섭이와 미영이가 보다가 그냥둔 "원초적 본능"
무삭제판이 적나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님. 죄송해요. 저희들이...실수를!"
민망해서 어 И줄을 모르는 두사람을 보고는 창섭의 아버지는 리모콘으로 화
면을 중지시키셨다.
"미안할거 없다. 기다리다가 그냥 비디오나 올까하고 밀어넣으니깐 그게 나
오더라. 그거 원초적 본능맞지? 지난번에 너네 어머니랑 본건대 약간 다른
게 있는거 같더라만..."
아마도 원초적 본능의 국내 상영판에서 삭제된 부분을 말씀하시는거 같았다.
"아버님 죄송해요. 연락이라도 하시고 오셨으면 이렇게 기다리시지 않아두
되셨을텐데...아버님 술이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전화하니깐 응답전화기만 웅웅거리고 창섭인 현장나갔다고 그러더라! 술있
니? 피곤하지 않냐? 그럼 한잔할까?"
미영은 욕실로 가서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안주를 준비했다. 이집은 아마
도 주식비 보다는 술이나 안주값이 더 많이 지출될정도로 냉장고에는 항상
술이 준비되어있었다.
"아버님 맥주한잔 하시죠?" 하면서 미영은 냉동된 감자 튀김을 꺼내서 제
빠르게 튀겨서 술상을 봤다.
"아가! 너두 이리온. 우리집엔 딸도 없는데 니가 딸 노릇도 해야지! 후후.
너두 술 가끔 한잔씩 하지? 한잔 하자~"
'아버님 죄송해요. 한잔하는게 아니라 창섭씨랑 저희는 매일 저녁 식사후
엔 항상 마시는걸요..'
"아니에요.아버님 제가 따라드릴께요. 어머님도 오셨으면 좋았을건대..."
하면서 술을 따라드리는데 창섭이 내숭떨지 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
었다.
"아니다. 다음에 같이 한번 오지,뭐... 너두 한잔 하자니깐 그러네! 어른
이 주는건 받아야지!"
처음에 결혼허락 받으러 갔을땐 굉장히 엄하실거 같았는데 계속 뵙고 보니
무척 너그럽고 세련된 분이였다. 서울에 찾아뵈었을때는 같이 볼링도 치
시고 연극도 보러가셨었다. 어머님보다 대하기가 편하신분인게 분명했다.
아버님이 주시는 술잔을 받고 따라드리다보니 창섭만 혼자 소외감을 느끼
는 표정으로 두사람을 쳐다보는것 같아서 창섭이에게도 술을 따라줬다.
초인종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708호집 진호가 아까 급하게 인사도 안
하고 지나친게 서운하다고 찾아와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님이랑 진호씨랑 넷이서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건배를 하다보
니 어느새 빈 맥주병들이 군인들처럼 벽을 따라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는게
좀 코믹하게 느껴졌다.
"아버지 술이 다 떨어졌는데 어쪄죠? 이제 고만 마시는게 좋겠죠? 피곤하
실텐데 이만 쉬시죠? "
"야~오랫만에 아비가 아들집에 왔는데 술이 없다구?"
"아니에요..아버님...술 사오면 되요. 창섭씨 같이 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편의점으로 가려는데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가
입구에 들어오는게 보였다. 낯이 익은거 같아서 자세히 보니 선정이와 아
까 같이 줄리아나 도쿄에 있던 일행같아서 불렀다.
"선정아! 여긴 웬일이니? "
"야~ 백미영...넌 인사도 안하고 가는게 어딨니? 너 잡으로 온거지 웬일
은 웬일이겠니? 아니...지난번에 같이 가던 니파트너?"
"응...우리남편이야. 인사해! 창섭씨 내친구 차선정이야! 아까 줄리아나
같이 갔던...그리고 선정이 친구들~"
"결....혼? 남...편? 꽈당~!"
선정이와정수라는 남자는 한방 맞은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창섭이와 미영
이를 쳐다봤다.
"아하~ 선정이 너 작년에 배낭여행갔을때 우리 결혼식했어. 후후...
그래서 너 몰랐구나? 우리 동갑이야!"
"그랬구나...웬지 니가 한남자랑만 다닌다 했더니 남편이었어?"
정수라는 남자는 실망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두사람을 쳐다보고 있
었다.
"미영씨 그럼 미씨족? 우와~ 앞으로 잘살펴봐야 겠어~ 흑흑...괜히 헛물
켰네....앙앙~ 근데 아깐 왜 인사도 안하고 갔어요?"
"아차~ 우리 지금 술사러 가는길이었어. 울시아버님 오셨거든...다음에
같이 놀러오세요. 지금은 좀 그렇거든요. 창섭씨 빨랑가자~"
창섭의 팔을 당기며 편의점쪽으로 총총히 걸어가고 있는걸 남은 세사람은
멍한 눈으로 고 있었다.
"이쁜여자 다시보자. 미씨족인가 확인하자"라는 표어라도 만들것같은 눈
빛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