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반지/장편시리즈

[소설] ***** 자유시대 부부 ***** (12)

종이반지 2012. 1. 10. 21:58
12. 주말은 연인처럼.

1년은 52주. 법정공휴일은 16일. 모두합해서 68일이 쉬는날이다.

법정공휴일과 일요일이 가끔 겹치는걸 감안하면 68일보다 적기는 하지만

시간의노예인 샐러리맨 울남편 석창섭도 공휴일에는 자유인인 것이다.

평일에는 서로 자기일때문에 바빠서 데이트하기가 힘들다. 같은방 같은

침대를 쓴다고해서 데이트를 하지 말라는건 헌법에도 나와있지 않다.

우린 휴일에는 다른 모든 약속을 거부한다. 우리둘만의 시간인 것이다.

우리두사람의 방에는 스케줄메모판에 2개있다. 항상 스케줄이 다르고 그러

다 보면 데이트하기가 힘들어지는것이다.

하지만 주말엔 방안에 콕쳐박혀서 TV를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건 우린 용서

가 안되는것이다.

미영의 직업은 다양하다. 프리랜서에 가깝다. 백화점 사보의 객원기자이기

도 하고 백화점 개설강좌를 맡아서 하고 있다. 그리고 등단하지 못한채

출간한 엉터리작가이기도 하다. 아마도 결혼생활도 글쓰는 소재로 생각하는

건지 집안 구석구석에 손닿는곳이면 메모지가 널려있는것이다.

백화점 개설강좌는 일주일에 2번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쁠것은

없지만 사보에 투고할 원고를 쓸때면 남편인 내가 굶는지 어떤지 관심도

없는것이다. 결국 라면냄비에 코를 박고 울먹이는 나만 억울한거다.

작년 그녀와 내가 결혼해서 본 개봉관영화의 횟수는 17편이다.7개월동안 

17편을 봤다면 굉장히 영화를 좋아하는편에 속하지 않을까?

우리의 데이트는 영화를 보는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글쓰는 사람에게

는 많은걸 보고 느끼는게 중요하다. 영화만큼 그런걸 충족시키기 충분한

것도 없는것이다. 간접적 경험을 얻기에.

물론 거의 영화는 주말에 개봉하기 때문에 개봉하는 첫날에 영화를 보게

되고는 했다. 그런후에 우리부부의 영화평론에 의해서 그영화의 흥행여

부가 결정되는것이다.  

작년 5월 "서편제"가 개봉했을때 아무도 그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우리부부는 그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방방 뜨고 댕겼다.

물론 그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아~ 정말 한국적 정서가 베어있는 수준있는 영화예요. 그런 영화를 안봤다

면 지적수준을 의심해봐야죠? "

자신의 지적수준을 의심받는데 그영화 안볼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우린 수준이하의 영화를 봤을때도 기어코 다른사람들에게 권한다.

그건 왜냐구? 우리만 돈버리긴 억울하니까라면 답이 될까?

여하튼 오늘은 우리부부가 데이트하는 토요일이다.

토요일 12시근처에 전화가 울릴땐 그녀일 확률이 99%이다. 보드카의 알콜

도수보다도  훨씬 높은 확률이다.

"석창섭씨? 오늘 시간있어요? 2시쯤 어때요? "나인"에 있을께요"

토요일12시쯤 걸려오는 전화는 사무실에서도 당연히 나에게 걸려오는 그녀

의 전화라고 생각해서 벨이 울려도 전부 받으려 하지 않는것이다.

"석창섭씨...결혼해서도 여전히 인기 좋으시네요. 이대리님도 석창섭씨처럼

결혼해서도 저렇게 활기넘치면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하는 옆자리 김진희

씨의 한마디에 이대리의 눈이 샐쭉해지는게 안봐도 뻔했다.

요즘 한참 잘팔리는 광고카피에도 있지 않은가? "애인같은 아내"

하지만 나의 신부는 아내라는 말이 어색할때가 참 많다. "미씨족"이라는

말조차도 어색하다. 차라리 X세대라는게 더 잘어울릴지도.

국제호텔에서 삼덕동으로 내려오다 보면 "나인"이 보인다. 널찍한 통유리

속에 철재의자가 패션매장같은 분위기를 내는 신세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셀프커피집이다.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의 자리에 앉아서 나보다 더 멋있게 담배를 피우

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손톱과 입술만 빼고 모든것이 다 검어보였다.

유난히 긴 그녀의 손가락이 그녀가 피우고 있는 피네스에 처럼 더 가늘게

보였다. 

"창섭씨. 2분 늦었다! " 그녀가 바로 나의 신부 미영이었다.

저녁이면 재즈풍의 음악을 틀어주는 "나인"을 좋아하는 미영은 낮시간엔 

아무음악이라도 나오면 그냥 장단을 맞춰서 고개를 끄득였다. 가끔은 날

카롭게 손질한 손톱으로 탁자를 치기도 하고.

오늘 미영은 배꼽티를 입었다. 가끔 그녀는 그렇게 나를 놀라게 할만큼

색다른 옷차림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분명히 새로산옷은 아닌대도 주말이

면 그녀는 다른모습인것이다. 글쓴다고 머리를 벅벅 긁을때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

솔직히 난 다른남자와 미영이의 배꼽을 공유하기는 싫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것이다. 우린 어느때든 서로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존중하기로

했던것이다. 

" 자기 나 오늘 좀 심했지? 싫어? 어 Е다. 흐음...."

"아냐아냐...아주이뻐. 특히 배꼽이. 근데 그옷 언제 산거야? 못보던 옷

같은데? 나보고 사달래지...."

사실 우린 독자경재노선을 걷고 있다. 오피스텔 관리비와 공과금이나

적금은 똑같이 내고 나머지 자신들의 수입은 스스로 관리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도 가끔 아내의 옷은 사주고 싶은것이다.

"응...작년에 세일할때 샀어. 자기꺼두 하나 사줄까? 참참..나 그거 먹고

싶어...가자~ "

그녀는 임신을 하지 않고서도 입덧을 하는여자다. 먹고 싶을땐 그게 언제든

먹어야 진정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요리하는걸 좋아하는지도 모르

지만 그녀는 정말 알수 없는 존재인것이다.

오늘은 또어떤 음식을 떠올린걸까?

누굴 안다는건 누굴 사랑하는것이랑은 같은건 아닐것이다. 일년동안 그녀와

살면서도 난 전혀 그녀를 알지 못하는것 같다.

하지만 누굴 사랑한다는건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지.

자 그럼 그녀의 가짜입덧을 중지 시키기 위해 따라가 볼까?

퇴락한 황금빛 햇살이 와인빛으로 코팅한 그녀의머리카락위로 잘게 부서지

고 있는걸 보면서 그녀의 충실한 하인인 나는 긴걸음으로 성큼성큼걸었다.

마치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처럼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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