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때 따라가기다~알았지? 그리고 나 택시
비 줘! 구럼 허락해주지..."

이들부부는 한번이상 묻지 않는다. 리바이벌은 시간낭비인것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거 억지로 꼬치꼬치 캐물어봐야 알고보면 별거 아니다.
믿고 사는 사회 구현을 실천하고 있는것이 우리의 초짜부부인것이다.
창섭에게 차키를 넘겨주고 배추이파리랑 같은 빛깔인 만원짜리 한장이 손에
들어왔다. 요걸루 뭘사먹을까? 사실 오늘은 외출할일이 별로 없는데...
만원을 순식간에 강도당하고도 창섭은 뭐가 그리좋은지 싱글벙글이다.
'흠..뭔가 있긴 있어. 하지만 언젠가 알고 말꺼야..흐흐...'

"자기...오늘도 운전조심하고 여자미니스커트 조심하고 빠빠~"

얼굴에 의심스러움 같은건 내색조차 하지 않고 나이브하게 창섭의 이마에
입술자욱을 화인처럼 박아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돌아서면서도 뭔가 좀 걸렸지만 느긋하게 샤워나 
즐겨보기로 하고 현관문에 체인을 거는 순간 의심을지워버렸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누가 벨을 누르는거다. 겨우 바디크렌져 발라서 거품
내고 있는중인데 누가 이렇게 타이밍을 못맞추는거람. 

"나가요..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겨우 거품만 없애고 타월지로된 샤워가운을 걸치고 머리엔 타월을 감고 
나가서 체인을 풀지 않은채 내다 보니 장미꽃바구니를 누군가 들고 있는
거였다.

"누구세요? 무슨일? "

"아~네. 꽃배달나왔읍니다. 저희는 바쁘신분들을 위해서 대신 꽃이나 선물
을 배달해 주는 회사입니다. 백미영씨 맞으시죠? "

그제야 겨우 체인을 풀고 장미로 가득채워진 꽃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누가 보낸거예요? "하면서 바구니가장자리를 살폈지만 아무런 메모
도 없었다.

"저희는 전화로 전화받고 송금확인후 배달을 하는데 주문하신분 성함은 
안밝히셔서요. 그럼 이만. 안녕히계십시요."

5월의 이른아침에 받아든 누가 보낸지도 모르는 장미바구니를 받아들고 
미영은 갸웃갸웃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창섭씨가 나 놀래켜줄려구 보냈구나. 오랫만에 꽃을 받는 기분 좋은데...
역시 내가 남자하난 잘 골랐지. 탁월한 선택이란 이런경우를 말하는거 아
니겠어? 흐흐...좋다...'
샤워를 다시 하기 위해 욕실로 간 미영은 좁다란 공간이 싫어졌다.
'흠..집에 있을땐 이럴때 장미꽃잎을 욕조가득 채워놓고 느긋하게 목욕을
즐겼을텐데...흠...'
괜히 심통이 나서 대충 샤워를 하고 장미향이 나는 샤워코롱을 발랐다.


창섭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1년동안 미영을 위해서 넣은 적금
을 타는 날인것이다.

"석창섭씨.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그집은 권태기도 없수?"

"권태기요? 우린 그런거 영원히 없을겁니다. 태기가 있으면 몰라두..."

"태기요? "

"부인이 임신하셨어요? 그래서 싱글벙글한거예요?"

"네? 아뇨...그랬으면 좋겠다는거지요. 바램이랄까..."

창섭은 갑자기 기분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기라...
26살이면 아기엄마가 되기에 빠른편도 아닌데 미영은 전혀 그럴생각이 없
는거 같았다. 지나다가 이쁜아기봐도 무표정이고. 화장대 서랍엔 언제나
피임약들로 가득차있고...
아기라...아기...우리아기...

<다음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 자유시대 부부 *****



16. 동상이몽 (2)


미영은 외출준비를 끝내고 퇴근시간쯤 전화할 창섭을 위해서 창섭의 삐삐에
메모를 남겼다.

"창섭씨. 나 지금 외출해. 저녁먹고와.특별한거 있음 삐삐쳐줘!쪼옥~"

결혼하고 처음으로 상현을 만나는거였어. 상현은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자친구였다. 물론 지금도 친구이긴하다. 예전이랑은 다른 의미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기전에 콤팩트를 꺼내서 화장을 확인했다.
자줏빛이 도는 붉은색 립스틱. 아이샤도우를 칠하지 않은채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마스카라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는 화장이었다.
오피스텔입구에 낯익은 흰색 엘란트라가 보이고 상현이 빙긋웃으며 서있
었다.

"야~ 미영이 너 여전하구나. 창섭씨는 역시 탁월한 선택? "

"그럼...아마 너였다면 쪼잔하게 날 여편네로 전락시켰을껄?"

"글쎄...모르지...그건. 나한테는 기회를 안줬잖니.후후.."



창섭은 퇴근준비를 하고 맘이 들떴다. 적금을 탄돈으로 미영이를 위해서 
근사한 시간을 보낼작정을 하고 수화기를 드려는데 삐삐가 울렸다.
집이었다. 외출한다고 저녁먹고 오라는 미영의 메세지...
갑자기 멕이 탁풀렸다. 아침에 확인한 스케줄판에는 아무것도 없던데 누구
를 만나는걸까? 삐삐를 치려고 온후크버튼을 켜다가 말았다.
창섭은 할수 없이 시내로 나가서 "티파니"라는 보석상을 찾아갔다.
미영이에게 어울릴만한 반지를 고르려고 진열장안을 들여다 보는데 누가 
아는척을 하는것 같아서 돌아보니 화정이 서있었다.
화정은 대학때 창섭이와 캠퍼스커플로 소문이 나있던 친구였다. 물론 그건
소문에 불과했고 무지 친한 친구였을뿐이었다.

"아니..화정이 아냐?반갑다. 그런데 대구엔 웬일이니? "

"후후...여전하네. 결혼해두 변한게 없네. 응...이사람때문에."
하는데 화정이 뒤에 남자가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화정씨 약혼자 이상원입니다. 약혼반지 고르러 왔죠.."

"아...그러시군요. 결혼식에 꼬옥 초대해주세요. 여기 제 연락처.."

"창섭씨는 여기 웬일이야? 아하...작년 이맘때 결혼했지? 부인 선물사러
왔구나? 그치? 여전히 자상하네...상원씨도 좀배워요..알았죠? 골랐어?"

"아니...아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창섭은 화정의 도움으로 미영에게 어울릴만한 반지 하나를 골랐다. 결혼할
때 둘이 18K반지 하나 나눠 낀게 계속 맘에 걸렸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지만 미영이도 보석반지 하나쯤 갖고 싶을꺼라는 생각에 따로 미영이를
위해서 적금을 하나 들어뒀던 것이다. 미영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미영이에게 어울릴거 같은 자그마한 사파이어가 박힌 심플한 반지를 하나
골랐다. 반지를 고르고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셋이서 한잔하기로 하고
수성못에서 가까운"카사블랑카"로 갔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연상되시는분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그곳엔 잉그리드버그먼도 험프리 보가트도 없다. 그이름이 풍기는 이미지
가 좋아서 미영이와 결혼하기 전에 여러번 갔었던 곳이었다.
오늘도 미영이와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고 반지를 건네주고 싶었는데...
'칫..자기복 자기가 찬거지..뭐! 오늘도 락카페 가서 놀고 있겠군.'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유난히 짧은 미니를 입은 여자가 뒤따라오는 남
자를 향해 웃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미영이었다.
창섭은 미영이 들어오길래 기뻐서 손짓을 하다가 뒤따라 오는 남자를 보고
멈칫하고 말았다. 창섭의 손짓을 미영이도 봤는지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
오다가 옆자리를 보고 멈칫하는거 같았다.

"미영아 어서와. 저녁먹고 오라더니 데이트 있었어? "

"으응...그런데 자리가 없나봐. 다른데 가야겠네..집에서 봐.."
하더니만 화정을 향해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같이 온남자의 팔을 잡고 나가
버리는거다.

"창섭씨 부인아냐? 그런데 왜 나가지? 나가봐...둘이 싸웠어?"

"아냐...그런거. 괜히 이런곳에서 만나니까 머쓱해서 저러는건가봐."

미영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온 상현에게 몸이 안좋아서 집에가서 쉬어야겠
다고 말했다.

"왜그래? 많이 안좋아? 아까 너네 남편아냐? 그래서 그러는거구나? 남편이
다른여자랑 같이 있어서? "

"아냐...그런거. 그여자 나두 아는걸. 그냥 속이 좀 안좋아져서 쉬고 싶어
서 그래. 미안해서 어쪄지? 오랫만에 왔는데...내가 담에 대전한번 갈께. "

"그래...미안하긴. 다음에 대구오면 너네 남편이랑 술한잔 해야겠는걸.
너 여전히 속빈강정이구나.건강해야지.약국에 갈까? 너네 남편 부를까?
싫어?에고 맘상하네. 그럼 집에 태워다 줄께.가자..."

"아니...차 여기 있어. 내가 운전하고 갈께.걱정하지마. 전화할께."

"아프다며 운전하겠다구...야~ 태워준대니깐. 쪼그만게 고집은..."

"운전 못할만큼 아냐...괜찮대니깐..."

미영은 상현이 말리는데두 기어코 운전을했다. 
창섭이 화정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다음에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말
을 남기고 나와보니 미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차도 보이지 않았다. 미영이 타고 간 모양이었다. 

'이런경우를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않나? '



<다음에 이어집니다>



              ***** 자유시대 부부 *****



17. 동상이몽 (3)


미영은 베란다에 기대어 팔을 괴인채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그여자랑 같이있었어. 우리 결혼식 피로연할때도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
보던 그여자... 하필 거기에 그여자랑 있을게 뭐람. 창섭씨 친구말로는
두사람 유명한 캠퍼스커플이었대는데...흠. 웬질투람... '

"띵똥~띵똥..."

"다른데 간대더니 집으로 온거니? 그리고 오늘 차 내가 쓰기로 했잖아!"

"오늘 원래 내꺼였어. 내일 쇼핑에 안따라 오면 되잖아. 뭐~ "

"쇼핑말고 또 있을껄. 배추이파리도 내놔야지~"

"그래..치사하다 치사해. 다른여자한테는 근사하게 저녁사주면서.나한테
택시비준거도 아깝지? "

"너 왜그렇게 유치하게 구니? 너 화정이 모르니? 오호라..그러고 보니 너
질투하는구나? 그래?그런거니?"

창섭이두 이상하게 아까 카사블랑카에서 미영이가 상현이와 같이 들어오는
걸 본 순간 무언가 확 솟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색은 못하고 괜히 미영이
속을 긁어주고 싶은거였다.
그런말에 그냥 얌전히 있을 미영이도 아니었다.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사포같은 반격이 왔다.

"질투는 무슨. 질투도 사랑해야 생기는 거랬다. 내가 언제 창섭씨 사랑한
다고 결혼하쟀나? 상현이보다 잘해줄거 같아서 그랬지. 내가 잘못선택
한거 같아. "

"야~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한사람이 누군데~나아니면 구제할 사람이 없을
거같아서 델구 살아주니깐 하늘같은 서방님을 못알아보고 기어오르네~!"

"기어올라? 웃기시네...내가 바퀴벌레냐 기어오르게. 혼자사는거 불쌍해서
그런줄모르고...자기 잘나서 그런줄 아네...!"

'저럴땐 정말 확패주고 싶어진다. 무슨여자가...'

창섭은 주머니를 더듬거려 담배를 찾았지만 아까 카사블랑카에 급하게 나오
느라 두고 온 모양인지 없었다. 술이라도 마셔야 겠다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냉장고에는 미영이 마시는 소주만 잔뜩 들어있었다.
'으...정말 저밖에 모르는 저 이기적인 여자가 뭐가 사랑스럽다고..'

"야~ 너만 사는집도 아닌데 맨날 너먹는거만 사는거야? 생활비 똑같이 내잖
아! 맨날 음식이라고는 식중독 안걸리면 다행이구 자기입에 맞추기나 하구
정말 나니깐 참아주고 사는줄 모르구...."

그러면서 창섭은 홧김에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부어서 맥주마시듯이 벌컥벌
컥 마시는거였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깐 말인데 아내라는 여자가 아침에 밥을 해주나 그렇
다고 와이셔츠를 한번 다려주나. 맨날 자기일하기 바쁘다고 시장도 나보고
보래지를 않나. 그리고 아내 스타킹이나 생리대 사다주는 남편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으읔....취한다...소주도 마실만 하네...너...이쁘다..이쁘다
하니깐 정말 이쁜..줄..아.ㄹ...고.. 까..부는..데...까불...지 말라..이거
야...씨~ 남편알기를 지가 깔고 앉는 방석쯤으로 알고..."

하며 미영이를 막 몰아부쳤다. 미영이는 기가 막혀서 한동안 눈만 동그랗게
뜨고 창섭이 하는 모양만 지켜보고 있었다.
창섭은 미영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무언가에 걸려 풀썩 주져앉았는데 뭔가
손에 걸렸다.

"이게 뭐야? 장미꽃이네...오호라...옛날 애..인이 장미꽃 바구니까지 사
가지고 집에 왔..던 모양이군? 오랫만..에 그렇게 찾아..오니까 기뻤어?
여전히 너 좋아..하는거 같아서?"

'그럼? 장미 창섭씨가 보낸게 아니란 말이야?'

미영은 놀라서 창섭을 바라보며 물었다.

"창섭씨 아침에 장미 보낸거 아니었어?"

"장미? 그딴걸 내가 왜 보내니...니옛날애인이 보낸거겠지..."

미영은 기가 막혀서 할말을 정말 잃어버렸다. 술마시면 사람들이 진실을
말한대더니 그런거였군. 

"오랫만에 사랑했던 그녀를 만나고 나니깐 나 보기 싫다 이거지? 그런모양
네. 권태기인모양이지? 뭐 나라고 안그런줄 알아? 남자가 쪼잔하게 머리카
락하나 떨어진걸 못보질 않나 바싹말라가지고 기생오래비같이 생겼으면서
혼자 잘난척은 다하고 나두 아놀드슈바제네거나 미키루크,캐빈코스트너같은
남자가 더 좋았다구! 다만 남편감으로 적당하다 싶어서 결혼하자고 한것뿐
이었어. 나두 뭐 그렇게 좋았던줄 알아?난 권태기 10기는 넘었겠다.
장하다. 석창섭~그렇게 싫으면서 어떻게 1년동안 아무렇지도 않게지냈어? 
창섭씨 이중인격자야? "

둘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말들만 던져대고 있었다. 마치 오늘로 모든걸 끝내
버릴것처럼 으르릉 거렸다.
둘은 서로 부정하고 있었지만 질투라는 감정이 서로의가슴속에서 맹렬히 두
사람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영은 침대위에 있던 창섭의 배게를 바닥으로 던지면서 싸늘한 눈길로 창
섭을 노려봤다.

"이거 내침대야. 나혼자 잘거야. 신토불이인 사람이 불편해서 그동안 침대
에서 어떻게 잤나몰라?"

하지만 창섭도 지지않고 벼개를 들고 침대위로 올라갔다.둘은 등을 대고 
침대에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전쟁에 돌입을 했다.
하지만 창섭은 잘마시지도 않은 소주를 마신탓에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졸
음이 쏟아져내리는 눈꺼플을 주체할수가없어서 잠이 들고 있었다.

"쿵~!"

"끙~!"

<다음에 이어집니다>


              ***** 자유시대 부부 *****


18. 동상이몽 (4)

미영은 잠들은척하면서 일부러 창섭을 확 밀어버렸다. 창섭이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걸 제일 못견뎌 하는거 알면서 일부로 그런거였다.
미영은 갑자기 내일 그연극을 보러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가지 방법"

창섭은 침대에서 떨어지는 순간 정말 또다시 영화 "장미의전쟁"에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왜 그토록 아내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정말 눈물겹게 실감이 났
다. 지금 마이클 더글러스가 옆에 있다면 같이 아내죽이는 법에 대해서 같
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래도 자기손에 끼여있는 18K반지가 자꾸 맘에 걸려서 적금까지 들
어서 사왔는데 기껏 아내라는 여자는 옛날 애인이나 만나구 댕기구...
여태껏 사람사는것에서 제일좋은것은 연애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것이라면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는데...
역시 연애랑 결혼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는걸 1년이나 지나서야 깨달다
니. 오호..통제라..'

둘은 밤새 어떻게 하면 서로를 못살게 굴까 잔머리를 원자력발전소 돌아가
는것만큼 열심히 굴려봤다. 핵핵거리면서...
이젠 평화로운 아침이란 아~ 옛날이여라는 노래처럼 흘러가버렸다.
창섭이 밤새 잠못들어서 충혈된 눈으로 깨어보니 묘한 냄새가 싱크대쪽에서
나고 있었다. 읔...카레.
마시지도 못한 소주를 마시고 난 아침에 해장국생각이 간절한대도 미영은
카레를 넣은 수제비를 아침부터 끓이고 있는것이다.
'으...저 지독한 여자. 이제 전면전이라 이거지? '
창섭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그래도 욕실에 가서 말끔히 씻고 깔끔한 차림
으로 식탁에 앉아서 카레를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동안 내가 너한테 해준거 반만큼이라도 해줄수 있는 남자 있음 나와 
보라그래...두고보자. 이제 나도 안져줄거다.'

그리고나서 여느날처럼 둘은 동전던지기를 했다. 싸늘한 웃음을 주고 받으
면서...하지만 창섭이 이겼다.
예전엔 10일에 5-6일은 미영이 이기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날이후 미영
은 2번밖에 이기지 못하고 계속 창섭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차키를 
가지고 나갔다.
덕분에 미영은 백화점으로 강의 나가는날도 허겁지겁 택시를 타야 시간을
맞출수가 있었고 항상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해 헤메야 했다.
그날이후로 창섭은 자기빨래만 하고 다림질도 자기것만 했다. 청소를 해
도 자기침대쪽만 머리카락을 치웠고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올때도 자기가
먹을 인스턴트 음식만 잔뜩 사가지고 돌아왔다. 콩나물해장국.된장찌개.
북어국같은 즉석음식이 싱크대구석에 잔뜩 쌓이기 시작했고 냉장고엔
미영이 마시는 소주를 밀어내고 창섭이 마시는 "밀러"나 "하이트"나
"OB아이스"가 들어있기 일수였다.
미영은 빨래를 제대로 못해서 세탁편의점에 가져다 맡기고 여태껏 창섭이
대신해주던 청소를 해야했으며 차없이 쇼핑을 하느라 헥헥거려야 했다.
그러다보면 원고를 전해줘야할 날짜를 못맞춰서 독촉전화를 받기 마련이
이었고 그런날이면 밤을 새워야했다. 
다이어트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만큼 체중이 줄어갔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창섭은 생기가 넘쳐있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안마시던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 하는 날이 많아졌다. 냉전이었다. 
여름이지만 집안에 에어콘을 틀 필요가 없을정도로 서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썰렁한분위기...
냉전10일째날 창섭은 약간의 취기속에 나른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서
눈을 떠보니 옆자리가 허전했다. 비디오의 디지털시계가 5:00를 깜박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커다란 T셔츠하나만 걸친 미영이 컴퓨터앞에서 키보드
를 토닥이며 앉아있었다. 안그래도 조그마한 몸매가 며칠사이 더 작아져
버린거같았다.
'흠..조금 야위었네. 내가 좀심했나? 그래도 남편 의심하고 옛날애인 만난
건 얄미워. 그리고 뭐? 사랑해야 질투한다고?그건 아무래도 용서가 안돼.
그래두 저러다 아프면어쪄지? 걱정되네...어쪄다. 안아다 재울까? '
물마시러 갈려다말구 창섭은 잠든척 하면서 미영의 뒷모습을 안스럽게 쳐
다보기 시작했다.
미영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기어들때 살짝 일어나서 욕?                                                                                                                                                                                                                                                                                                                                                                                                                                                                                                                                스레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냉전이라니...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
이 들기 시작했다. 저녁에 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백화점 강의나가기전에 드라이크리닝 할 옷들 챙겨서 나갈려고 옷장을 
뒤지다가 창섭의 옷도 가져다 주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사각형의 금박포장지로 쌓인 작은 상자가 툭하고 떨어졌다.

"이게 뭐지? 누구 선물주려고 넣어뒀다가 잊은건가?"


<다음에 이어집니다>




              ***** 자유시대 부부 *****


19. 동상이몽 (5)


포장지에 쌓인게 무얼까 궁금해 하면서 풀어볼까? 아님 그냥 넣어둘까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려다 응답기를 눌러버렸다.

"미영아...난데 나갔구나. 아침은 챙겨먹은거지? 있지이~미영아....
미안해. 내가 속좁게 굴어서.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내양복 주머니에 작은
상자 하나 들어있을거야. 그거 찾으면 나한테 삐삐쳐줘..알았지?"

바로 전화해서 찾았다고 그럴려다가 괜히 머쓱해서 핸드백에 상자를 집어
넣고 백화점 문화센타로 갔다. 
오후1시부터 3시까지 2시간동안 주부상대로 제과과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엔 취미로 배웠는데 어느새 직업으로 작은 강좌를 할수 있게 되었다.
괜히 맘이 들떠서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야 하는데 자꾸만 같이
넣는 바람에 쓸데없이 계란만 낭비하고 말았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수 없을정도 였다. 수강생들한테는 "컵파운
드케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켜주고 실습하는 동안 쵸코렛틀에 쵸코렛을
녹여서 만들고 있었다. L.O.V.E라는 글자와 C.S라는 창섭의 이니셜을 박아
약간의 위스키를 첨가해서 그를 위한 쵸코렛을 만들었다.

"아니...백선생님 누구 줄려고 이렇게 이쁘게 만드세요? 우리도 쵸코렛만
드는 실습하면 좋았을텐데...담에 우리도 이거 강습해주세여.."

"네...그러죠. 보통 발렌타인데이에 강습하는데 다음시간엔 특별히 하도록
할께요. 우리그이 주려고 만드는거예요.후후.."

강습을 끝내고 사보편집실에 들러 원고를 넘겨주고 담당직원이랑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4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저어...석창섭씨 부탁합니다. 현장에서 돌아왔나요?"

"네...석창섭입니다. 후후...미영아. 오랫만이다.그치?이렇게 니가 하는
전화받는거. 좋은데~상자 찾았어? "

"으응...나두..좋은걸...응..상자찾았어...이거 뭐야?"

"응...그거 절대 풀어보지 말고 그대로 들고 나와. 우리 오늘 뭐먹을까?
입덧안해?후후...우리공주님~ 먹고 싶은거 다말해봐..."

"우리 스파게티 먹자...그래두 돼?"

"그럼...좀이따 봐. 첼로에 있을래? 요즘 거기 니가 좋아하는 첼로소품
많이 틀어주더라...그럼 거기 있어.."

오랫만에 푸근한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서로 조금씩만 이해를 했으면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로 지내지 않을수 있었을텐데...
6시가 될때까지 야시골목을 돌아다니며 간단한 옷가지도 고르고 데레사소비
센타입구에 파는 "호떡"도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백을 지나서 한일극장 건너편에 있는 "첼로"에 들어갔다. 그리고 커피한
잔 주문해서 느긋하게 거리를 내다보며 음악을 들었다. 마침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소나타"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그렇게 둘이 서늘한 분위속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건 빨래두 청소
두 차가 없어서 종종걸음쳤던건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건 바로곁에 있으
면서도 서늘하기만했던 창섭이 남같이 느껴진다는거였다.
손만 뻗으면 언제나 옆에 있는데도 손끝하나 닿는게 힘들었다.그가 싫은
내색하며 뿌리칠까봐 두려웠다. 
한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정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썰렁했다.
그가 먹어주지 않는 음식들은 만들기도 그리고 혼자 먹기도 싫었다.
아마도 며칠만 더 그런상태가 계속 되었다면 신경이 피아노선처럼 팽팽하게
당겨져서 끊어질것만 같은 그런기분이었다.
더더욱 그가 옆에 없다면...
시무룩해져서 손가락끝으로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창섭의 이름을 쓰고 있
었다. 지워지면 또 쓰고...그것도 지치면 탁자위에 물을 찍어 써보기도
하고...

"혼자세요? 합석해도 될까요?꼬마아가씨? "

"으응...왔구나...빨리왔네. 겨우 10분밖에 안늦었는걸.뭐..."

"으아..10분씩이나가 아니구? 우리미영이 맘도 넓어졌구나...후후.."

"저어...창섭씨. 나아 미안해.괜히 심술내고 질투하고 맘에 없는말 지껄여
대고 그런거...미안. 그리고 상현이 친구야. 오랜친구. 애인아니었어..."

"응..알아. 며칠전에 상현씨 출장왔다고 술한잔 하자길래 만났었어. 좋은
친구더구나. 다음 출장오면 울집에 놀러오라고 그랬어..."

"응...그런데 그여자...대구왜 왔대? 여전히 자기 좋아한대?"

"참..너두..화정이 약혼자랑 그날 같이 만났어. 니가 들어왔을때 그사람
화장실 갔었구...오해했구나? 그날 보석상갔다가 우연히 만났어.."

"보석상? 거긴 왜? 친구 애 돌반지 사러? "

"아니...내가 가지고 오라는 상자 가져왔지? 그거 꺼내서 풀어봐"

그제야 상자를 꺼내서 풀어보았다. 미영이 좋아하는 바다빛의 파아란 작은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창섭이 미영의 결혼반지를 낀손가락옆에 살며시
끼워주었다.

"그거 사러 갔었어. 그거 살려구 나 1년동안 적금 넣었었거든...그날 그거
사서 너랑 근사하게 저녁먹을랬는데 너 데이트있다고 나간대잖아...
그리고 카사블랑카에 상현이 그친구랑 다정하게 들어오고..."

"그랬구나아...화낼만도 하네.내가 잘못한거지...그치? 아직도 나 밉지?
응? 나 얄밉고 쳐다보기도 싫지?응응? "

창섭은 대답은 않고 미영의 손을 잡고 살며시 손등에 뽀뽀를 해주었다.

"창섭씨..고마워. 정말야..진짜루....무지무지..엄청...나 그말 수정할께.
자기 아놀드슈바제네거보다 미키루크보다 캐빈코스트너보다 몇만배는 
더 멋진 남자야..남편감으루도 애인으로도...그리고 이거 내맘이야."

창섭이 미영이 내밀은 상자를 열자 그속에서 아까 만든 쵸코렛을 입속에
밀어넣어주면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자기 내맘 먹은거다...어때? 달콤해? 그리고 이거봐..."

미영이 물을 찍어서 탁자위에 글자를 한자씩 쓰고 있었다.

사.랑.해.

<다음에 이어집니다>


'종이반지 > 장편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자유시대 부부 **** (2)  (0) 2012.01.10
[소설] *** 자유시대부부 *** (1)  (0) 2012.01.10
종이우산 4  (0) 2012.01.09
종이우산 3  (0) 2012.01.09
종이우산 2  (0) 2012.01.09
AND